히스테리안 출판사는 독자적인 플랫폼과 강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짤막한 토막 이야기 5편: 히스테리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줄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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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안 클럽원과 삼일절, 반짝 움직여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연휴로 걸어보았는지, 그 해답은 여전히 지금도 확신할 순 없습니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1919년의 세월을 더듬으면서 자유를 외쳤던 갈망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쳤던 애국열사의 숭고함도 있겠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 가족의 안위를 위해 제 한 몸을 던지지 못했던 처절한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마다 삶을 대하는 가치는 다를 것입니다. 숭고하게 마음에 새기는 이야기 또한 제각기 다르기에 희생이 반드시 선(禪)이라 할 수 없으며 희생하지 못한 것을 용기 없으므로 판단할 수도 없겠지요.
대통령 계엄과 탄핵을 둘러싼 문제로 온 나라가 찬/반으로 분리됩니다. 불안한 시대 때문인건지, 올해 동료들에게 ‘을사년’의 해에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숨겨진 것처럼 묘연하게 베일에 싸여있는, 대대손손 입으로 전해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싶었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습니다.
느낌을 핑계 삼아, 이야기를 만드는 친구인 연화와 인현에게 일종의 텔레파시를 보냈습니다.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이야기를 저보다 더 빠르게 찾을 것 같았습니다. 제 예상과는 다른, 제가 할 수 없는 일에 저 또한 몸을 맡기고 싶었습니다. 제 욕망으로 시작된 여정에 함께하는 걷기는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데, 저를 따라 동행하는 이가 나타날 때, 길 잃기는 여행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겐 ‘삶은 여행’이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습니다. 삶의 빈부의 격차는 커져만 가고, ‘세계’라고 일컫는 이 거대한 힘에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에 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감동이 희미해집니다. 나라가 망할 징조였던, 조선시대 정감록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민중의 염원을 나타낸 것처럼, 오늘날의 현실 또한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와 지금이나 붕당과 세도정치는 여전하다는 인상은 지울 수가 없고 자본과 물질이 우리를 구원할 것 같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가난하지만, 맹렬하게 숭고한 가치를 좇는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세계가 말입니다. 삶이라는 무게에 총알받이가 되어 온몸이 훼손되는 세계가 무섭습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언제나 비교하며 끊임없는 잣대로 삶을 판단 짓는 위선자가 되어갈까 봐, 옹졸한 저 자신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냥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땅에 발을 내딛고 걷고 싶었습니다. 삼일절날 서소문 현양탑에서 만나, 소의문 옛터, 환구단, 전봉준 동상, 3.1운동기념터, 보신각과 탑골공원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었습니다. 인현과 연화의 목소리를 따라 걸어갔습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며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걷습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태극기가 우리가 ‘한국인’임을 상기시킵니다. 저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주황색 끈을 표식으로 삼았습니다. 그 끈에는 '안전제일', '조심조심 코리아', '통로준수'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송수신기를 꽂고 걷는 저희에게 '어디서 왔냐'고 했을 때, 자신있게 오렌지 부대라고 답할 수 있었죠!)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분들은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대부분이었고 작은 우산과 바람막이를 입으며 추위와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귓가에 꽂혀있는 수신기는 인현이 골라 온 문장이었고 그 문장은 때론 과거로, 지금이 아닌 어딘가로 데려다 놓아 귀신같은 얼굴을 제 눈앞에 데려다 놓습니다. 귀신의 얼굴은 이것이 사건의 ‘진실’이라고 목 놓아 부릅니다. 엄마와 닮은 어떤 여자, 죽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닮은 남자, 모두 다 같은 얼굴로 저를 쳐다봅니다.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일까?
선악, 옳고 그름, 이론과 경험, 우리를 분단시키는 것들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저마다 애틋하게 살아가는, 저마다의 진실과 사연에 몸을 맡기고 손을 건네고 싶습니다. 삶이 지속되는 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부한 한마디와 함께 말입니다.
📕삼일절게릴라 - 레퍼런스 자료 다운로드 - https://drive.google.com/file/d/1Yj7w1uCdtmhM8YVGdI2dQIS76DUjolB6/view?usp=sharing
운영: 강정아, 이연화, 이인현
텍스트 큐레이션: 이인현
진행 및 해설: 이연화
함께한 사람들: 이연화, 김예인, 원상은, 이태정, 최홍규, 박서희, 이인현, 한승우, 남궁예은, 강정아, 김솔지, 유은, 황보린, 강병우
사진촬영: 피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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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서 온 소식 - 지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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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활동하는 노드 트리(이화영, 정강현)는 삶과 터전에 대한 리서치를 수행하며,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을 관찰합니다. 이웃 간의 대화, 품앗이, 놀이, 웃음, 기억—아주 사소한 것들이 이들의 작업 소재가 됩니다. 예술가가 삶의 터전을 가꾸어가는 것이 지역에 어떤 에너지를 불어넣을지 곁에서 지켜보며, 그 변화의 흐름에 적극 동참하고 싶습니다.
부여로 이주한 지 어느덧 5년 차가 된 노드 트리가 삼일절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행사를 기획한다는 사실이 쌩뚱맞거나 놀랍지 않습니다. 연대와 ‘함께’라는 말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웃고 떠들며 밥을 나누어 먹는 감각 속에서 실현된다는 것. 그것이 노드 트리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작업일 겁니다. 지역에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내려놓고, 함께 삶의 터전을 가꾸어 나가는 일임을 이제는 분명히 알 것 같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좇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갈지 더욱 궁금해집니다.
👀 들판(화영)은 예술가로서 부여군으로 출근한다고 합니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가 고정적이지 않은 예술가의 직업적 특징상, 일터가 곧 마을이 되기도 합니다. 부여군, 그리고 그 마을이 들판의 출근 장소가 됩니다.
들판을 떠올리며, 제가 살고 있는 서울을 다시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의 영향으로 저도 모르게 삼일절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한편, 노드 트리는 2024년 충남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게 됩니다. 올해 그가 선보일 개인전이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네요. :)
사진 출처: 서산시대(박두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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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문 기획전시, <평화 문해력>
수원에서 열리는 <평화 문해력> 전시는 3월 1일부터 5월 18일까지 이어집니다. 전시의 시작과 끝이 정해진 이 날짜는 한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날들이기도 합니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을 넘어, 문단과 문단 사이, 행간과 행간 사이를 해석하며 사회적 환경과 배경,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평화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과 배경, 그 맥락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구조적 불평등, 차별, 혐오, 전쟁과 폭력에 맞서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갈등을 어떻게 ‘함께’의 문제로 읽어낼 수 있을까요? 김재홍, 이겨례, 최지인, 현승의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하고, 소현문지기 백필균 운영자와의 대담을 권장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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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안 출판사는 독자적인 플랫폼과 강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다양한 협업자와의 기술을 통해 예술가의 작품과 전시, 기록과 프로그램까지 기획 및 제작에 힘을 쏟고자 합니다. 이야기는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동의 사건에 연루되는 것이 예술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히스테리안과 협업을 원하는 분들은 hysterian.public@gmail.com 로 문의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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