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마지막 에피소드를 전하며
저는 지금 치앙마이의 메인 상권인 올드타운에서 떨어진 곳에 지내고 있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는 아주 조용한 동네에서, 매일 거의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이 주는 기쁨을 충분히 느끼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 기쁨 안에는 지금 마무리하고 있는 작업 역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시 〈둔주: 그림자가 된 전통〉 도록과 「숨은신」 원고 작업을 병행하며, ‘전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제 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지닌 아름다움은 기성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때로는 숭고하다고 느껴집니다. 작년 네팔 히말라야에서 마주했던, 하늘이 마치 바다처럼 펼쳐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저는 압도되는 아름다움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 연상 속에서 아시아 문화와 불교는 제 안을 맴도는 아름다움의 실체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무엇을 믿는가,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인해 서로의 차이가 불화와 파괴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왜 우리는 반복적으로 관심을 두게 되는가. 아마도 그것이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그렇다면 어떤 전통은 지켜져야 하고 어떤 전통은 삭제되어야 할 때, 그 기준은 과연 선택의 문제일까요. 이 질문은 여행지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으며 그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볼 때마다 더욱 또렷해졌고, 그렇게 저의 여행 역시 시작되었습니다.
예약을 마치고 몇 달이 지난 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에서 전쟁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걱정이 앞섰지만 우선 예정된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이곳에서는 전쟁의 그림자를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평온한 일상 이면에는 삶의 고단함이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에 진심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피로를 풀어주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얼굴을 마주합니다.
오늘 택시에서 만난, 영어를 잘하는 태국 기사님은 한국인의 성씨로 박씨와 김씨가 많아 한국을 예전에는 ‘고려’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의 관계는 한국의 신라·백제·고구려와 비슷하다고도 덧붙입니다. 캄보디아와는 백 년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전쟁은 치앙마이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태국에서는 일본차와 독일차를 많이 탄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태국이 일본과 같은 좌측통행 국가라 운전석이 차량 오른쪽에 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태국과 일본의 관계가 한국과 묘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국 곳곳에는 일본 자동차 공장뿐 아니라 일본 음식 문화도 스며 있습니다. 그 배경을 찾아보니, 태국 역시 일본의 경제성장을 모델로 삼아 개발 정책을 추진한 피분송캄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는 한국의 박정희와 유사하게 읽히기도 하는 인물로, 경제·문화·정치 전반에 걸쳐 개발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친일 행적이라는 가해자의 위치에서 그는 책임을 피할 수 없었고, 일본으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태국의 역사로 연결되는데요. 태국은 서구에 의해 ‘시암(Siam)’이라 불렸습니다. 이 이름은 산스크리트어에서 ‘가무잡잡한’ 혹은 ‘황금’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태국인 스스로 사용하던 명칭은 아니었지만, 영국과 외교 관계를 맺으며 국호로 받아들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 이름에 완전히 만족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후 ‘타이랜드’로 국명을 바꾼 것 역시 피분송캄의 결정이었습니다. 이 역사는 후기 식민주의 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유튜브와 위키백과, 기사 등으로 빠르게 검색한 결과)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를 식민화하며 프랑스–시암 국경 조약을 체결했고, 그 과정에서 태국 영토 일부가 프랑스령 캄보디아로 편입되었습니다. 이후 국경을 다시 설정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사원의 귀속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원이 시암의 영토인가, 캄보디아의 영토인가 하는 질문은 전통과 신앙, 그리고 국경이라는 이름 아래 쉽게 봉합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태국은 공식적으로 식민지가 된 적이 없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있는 이곳 치앙마이는 한때 란나 왕국이었으나 시암 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그래서 치앙마이에는 태국의 수도 방콕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예술과 정서가 깃들어 있습니다. 역사의 이름 아래, 문화와 신앙의 충돌, 국경의 이름으로 봉합되지 않은 역사 뒤편에는 늘 폭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캄보디아 하면 떠오르는 폴포트의 ‘킬링필드’와 그 사건이 지닌 잔혹성,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던 수만 명의 죽음, 그 학살로 이끈 그의 사상이 두렵기만 합니다. 신념과 사상은 많은 것을 죽이고 없앴습니다. 그리고 그런 학살의 구조는 다른 얼굴로 지금도 반복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나쁜놈들의 말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슬픕니다...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 쓰고자하지만, 전통이 남긴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찜찜함은 ‘전통’이 언제나 ‘민족성’을 내포한다는 점입니다. 저에게 민족은 가족과도 같은 위계로 여겨집니다. 오로지 ‘나’로만 맺어지는 세계가 지닌 믿음이 무섭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제가 소중하다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 때론 그 잔혹성과 폭력의 심리를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 그 답을 결정하지 못한 채, 서울에서 가져온 작업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오늘도 치앙마이의 조용한 하루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가져온 책은 J.M. 쿳시의 『어둠의 땅』과 아베 코보의 『벽』입니다. 쿳시의 책 중 『나라의 심장부에서』를 굉장히 좋아하며, 그 작가의 문체에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매력적인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쿳시의 글을 읽는데, 그처럼 될 수 없기에 오히려 그의 글을 읽습니다. 그의 태생 또한 이번 여행지에서 책을 고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남아공 출신의 쿳시는 백인 가해자로서의 ‘폭력의 형이상학’을 해체하는 데 집중합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심리, 피해자를 섣불리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어둠의 땅』, 왕은철 옮김이의 글)에서 식민주의를 인간이 지닌 폭력과 어둠, 욕망의 측면에서 비틉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히스테리안을 운영하는 민주는 인도를 다녀왔고 저는 현재 치앙마이에서 부유합니다. 내년 히스테리안은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궁금해집니다. 편집자 병우 님이 히스테리안의 살림을 꾸리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026년 히스테리안의 「숨은신」 프로젝트에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2025년, 저의 사유와 여정에 함께 들어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2026년에도, 질문은 멈추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히스테리안
정아 드림.
* 추신 태국(Thailand)의 사원의 아름다움은 1월호에 전달드릴게요! 그리고 치앙마이 현대미술관에서 아라야 라스잠리안숙(Araya rasdjarmrearnsook) 개인전이 열렸는데요. 관련된 이야기도 다음 뉴스로..! 무엇보다 그녀의 작업은 물론, 아티스트 북이 아름다워,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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