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6편: 히스테리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줄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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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 가끔 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곤 합니다. 그 풍경 속 배경들이 엇비슷해서인지, 속도에 따라 실린 몸의 감각이 저를 지난 장소로 데려다줍니다. 이곳과 저곳은 서로 간에 닮아 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 또한 그리 다르지 않을 때, 아주 오래된 과거와 또 앞으로 도래할 미래가 현재라는 이름으로 굴러간다는 게 선명해집니다.
최근, 만주(장춘-훈춘-연길)를 다녀왔습니다.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는 독자 분들이라면 제가 만주로 향한 배경을 대략적으로 눈치채셨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왜 만주일까 궁금해하는 분들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요.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코로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살던 곳을 떠나 이곳과 저곳을 다니며 소위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라 여겨지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곤 했습니다.
한때는 번영했던, 잘 살고자 했던 욕망의 입구로 항구나 철도는 더 빠른 속도를 부축였고, 그 이동의 쓸모가 없을 땐 경로가 폐쇄됩니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무한한 줄기와 생명력을 뿜는 환삼덩굴과 쓰레기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제 키만큼 솟은 잡초와 그 잡초를 통과한 소리를 들으며, 삶이란 '시간'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고여 있는 시간, 제가 당도하기 전에 이미 도착해 있던 시간에 관해 생각하게 됩니다. 빈터, 생명을 품은 잡초, 용도의 쓰임이 파괴된 쓰레기, 비에 젖은 눅눅한 종이, 빛바랜 어떤 사물—그곳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 수만 번의 생이 반복되는 곳입니다.
내가 거주하는 이 땅, 이 위치성을 인지하면서도 그 바깥의 태초의 성질을 상상하다 보면, 이동하는 제 몸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경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주라는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저는 여러 겹의 시간을 동시에 굴리는 기분이 듭니다. 여진족이 살던 땅, 한때는 청나라로 불리던 땅, 한때 동북아시아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세워졌다가 지금은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의 이름. 제가 이곳으로 향한 건 어쩌면 이 지워진 이름들이 남긴, 욕망이 빠져나간 공간과 시간을 경유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연히, 아주 먼 옛날 패망한 나라의 터, 발해의 유적지, 팔련성에 가게 되면서 이곳에 오게 된 아주 오래된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터에는 나이 지긋한 조선족 남성이 있었습니다. 20년째 이곳을 지켜왔다고 전하며, 한·중 나라 간의 긴장으로 이곳에 한국인이 들어가 촬영하는 일을 금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이곳에 20년 동안, 24시간 동안 거주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그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사람이 살기에는 척박하였고, 그가 머물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니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찌릅니다. 임시로 지은 이 가변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20년을 살아왔는지,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때론 유배된 것과도 같아 보입니다. 멀리서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기록하는 일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이곳을 기록하는 일을 용인합니다.
이 모든 장면이 겹겹이 쌓이면서 이곳과 저곳이 쌓여, 지금 여기로 위치를 당겨옵니다. 아주 저 먼 우주의 별처럼, 별들이 모인 자리가 ‘점’으로 보이지만, 지구적 관점에서는 이름 붙여진 서로 다른 공간들은 ‘선’처럼 연결됩니다. 저 멀리 보면 별자리처럼 우리는 하나이겠지만, 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위치와 시간은 다르지만, 선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이 묘한 연결감이 저를 고양시킵니다. 이 땅에 제가 위치하고 발을 딛고 서 있지만, 제가 스쳐 간, 만났던, 지났던, 그리고 앞으로 향할 모든 것과 연결되는 느낌. 그리고 이 느낌을 근사하게 무엇으로 표현하고 싶지만, 그 태초의 감각이 이미 예술과 문학에서 다뤄왔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저는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또다시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는 북한을 바라보면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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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에 위치한 조선족마을, 조선족과 한족은 집 모양(처마, 벽, 문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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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두 번째 신간, 이인현 작가의 <호경>이 드디어 출간됩니다. 이번 책은 알라딘 북펀드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며,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선구매를 해주셨습니다. <호경>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폭넓은 의미를 다루는 작품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책은 초기 치매를 겪고 있는 실존 인물 ‘호경’을 이인현 작가가 만남을 통해 풀어 쓴 소설입니다. 당사자가 아닌, 가족도 아닌, 돌봄 전문가도 아닌 이가 한 사람에 대해 쓴다는 일이 ‘문학’으로 어떻게 가능할까요.
기억을 잃는다는 일, 내가 취약해졌다는 것, 그 취약함에서 오는 상실이 나를 비롯한 모든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두려움. 관계 맺고 사는 인간에게 ‘치매’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인현 작가가 만난 ‘호경’은 그 공포와 두려움을 넘는 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서정적인 시와 섬세한 감수성, 그가 지닌 분위기가 기억의 공백을 메웁니다. 소년 같은 ‘호경’과 그의 곁에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이인현 작가의 시선은 우리 내면에 깃든 감수성을 끌어올리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이번 디자인은 히스터스 멤버인 김경수 디자이너가 맡아주셨습니다. 주로 시각예술과 아트북을 제작해 온 경수 님의 타이포와 섬세한 독해가 이 책의 결을 잘 살려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트북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대중 출판의 가독성 사이를 훌륭하게 짚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뉴스레터 발송하기 바로 전,,, 인쇄본 확인을 했는데 내지에 오염된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인쇄에 이런 사고가 난 적은 또 처음이네요. 업체 선정에 엄청 심혈을 기울이고 이번 업체는 제가 주로 색감 위주로 뽑을 때 함께한 업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ㅠ 여러모로 슬픈 일이지만,,, 다시 재인쇄하기로(인쇄소의 ㅠ 불찰로..)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폐기가 될 책 또한 슬픈데요. 최대한 좋은 방향을 찾기를 바라며,, 예정된 일자는 아니지만 곧 책으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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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중간 보고 및 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 관람
만주 리서치는 12월 발표할 부산현대미술관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번 12월 노드 트리(이화영, 정강현), 남궁예은 작가님과 팀을 이뤄 신작 2편에 함께합니다. 이번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제안한 ‘의복’과 ‘공생직조’를 연결하는 작업입니다. 저와 작가님들은 이번 이 주제를 ‘부식’과 ‘유산’의 개념으로 연구했고, 그 개념의 중심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정강현 작가님의 생애사를 더듬으며, 최희진 연구자와 강병우 편집자, 이인현 작가님과 만주를 방문했습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기이한 여정의 중심에는 책 한권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한 ‘지명전설’ 을 찾으러 간 여정에서 연변민족출판사의 역할, 아주 오래된 조선족 마을부터 공안에 잡혀갈 뻔한 썰, 이 모든 길을 엮는 철도와 물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만강의 만주어 이름 투먼세겐은 '모든 물의 근원'을 뜻한다고 전합니다. 이 강을 국경으로만 읽으면 분단과 단절의 서사가 되지만, 근원으로 읽으면 부산의 바다와 만주의 강이 결국 같은 물의 순환 안에 있다는 이야기가 되죠. (이 이야기는... 다음 레터로..)
아무튼 '흐르고' 연결된다는 여러 이야기 심상에서 부산에서 이동근 작가님의 전시를 보았습니다. 이동건 작가님 또한 부산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며 지역의 구술사와 역사를 매개하여 부산 가덕도 / 대만 / 오키나와를 연결하여 제국주의의 식민 구조와 인간이 땅을 소유하는 자본주의에 관한 시선을 방대한 리서치와 사진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데요. 마침 작가님이 계셔서 작품 해설과 함께 9월 15일에 있을 <가덕을 걷다> 10월 10일에 있을 음악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노드 트리와 남궁예은 작가님은 9월 15일 이동근 작가님의 <가덕의 걷다>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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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마지막이 될 <이몽학의 난 그리고 꿈>
2019년?2020년부터 진행해온 이몽학 위령제가 올해로 마지막으로 열립니다. 이 위령제를 연 부여의 버섯농부 김정기, 우리는 '마스터'라고 부르죠. 모든지 뚝딱 해내는 마스터를 만나, 제 인생의 여러 시기를 지나며 땅과 바람에서 전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2020년부터 오간 부여를 온지도 시간이 꽤 흘렀네요. 어떤 이야기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또 어떤 이야기는 다음 잉야기를 준비하기도 하죠. 마스터를 만난 후, 최근에 발간한 '숨은신'까지 정말 이야기는 굽이굽이 입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출발은 9월 16일 수요일 오전 10시, 서울남부터미널로 잡고 있고 1박 2일 17일 목요일 늦지 않은 오후에 서울 도착하는 일정으로 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몽학 위령제에 합류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메일 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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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동시대를 포착하는 사람들 '히스터스' 멤버십
히스터스, 넓고 다양한 사유를 위하여
꾸준히 함께 읽고 쓰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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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포착하는 사람들, 히스테리안의 멤버십 '히스터스'에 함께하시는 독립기획자 '구정은'님이 9월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토요일날 부스를 지켜주기로 하셨어요. 예술학을 전공하고 읽고 쓰기를 허투로 하지 않는 성실한 정은님 볼때마다 많은 에너지와 영감을 얻습니다. 그녀가 최근 동료와 함께 기획한 '안티소셜클럽' 또한 궁금한데요. 저희 책과 함께 정은님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퍼블리셔스테이블 D-6번 부스로 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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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터스에 함께하는 '류서현' 님은 비서구문학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첫눈에 만나자마자 반했다는 말과 함께 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깊은 취향과 섬세한 시선이 감탄할 따름입니다. 그런 서현님이 아시아-아프리카에 관한 인문/예술 행사에 기획으로도 함께하고 계시는데요. 이 자리에 히스테리안도 꼭지를 맡게 되어 감사합니다. 저와 병우님은 숨은신을 경유하여 흑/백, 진영논리로 밖에 접근되지 않는 담론에 대한 여러 단상을 나눌 계획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접속 (금요일 자리는 다 찼고 토요일 자리가 여유 있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은 메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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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홍진 감독의 <호프>를 보고 동료들과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호프>는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추격자>, <황해>, <곡성>을 거치며 나홍진 감독이 일관되게 그려온 건 구원이 좀처럼 도착하지 않거나 끝내 유예된 채로 끝나는 서사였죠. 그런 그가 이번엔 제목부터 정면으로 '호프(희망)'를 내걸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도발처럼 느껴집니다. 제목이 약속하는 것과 영화가 실제로 건네는 것 사이의 간극. 그 낙차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이 완전히 갈리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냉소로, 누군가에게는 역설적인 위안으로 읽히는 지점.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호프 없음'이 오히려 지금 우리의 서사로 연결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까지 나아갔습니다. 영화를 둘러싼 이런 담화는 언제 봐도 재밌습니다. 이 대화의 다음 장을 철학자 허경 선생님이 리뷰로 다루어주셨습니다. 최근 출간된 <호프 끝장> 또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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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안 출판사는 독자적인 플랫폼과 강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다양한 협업자와의 기술을 통해 예술가의 작품과 전시, 기록과 프로그램까지 기획 및 제작에 힘을 쏟고자 합니다. 이야기는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동의 사건에 연루되는 것이 예술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히스테리안과 협업을 원하는 분들은 hysterian.public@gmail.com 로 문의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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